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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성장주 투자

원격의료의 미래

by 고니과장 2023. 3. 15.

원격의료의 미래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가장 히트 친 키워드 중 하나는 원격의료다. 당시 해외주식에 입문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원격의료 관련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의 텔라닥과 중국의 평안굿닥터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매수했던 중국평안보험그룹(601318)과 핑안헬스케어(1833)의 수익률은 현재 -10.97%-73.30%다.

 

계좌 한편에 묻어둔 채 잊고 지냈던 원격의료 관련주는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에 대해 이번에 <의료기기 산업의 미래에 투자하라>를 읽으며 원격의료에 대해 다시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바이러스와 헬스케어 산업의 디지털 전환

최근 주식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소위 신경제라고 불리는 신성장 산업이 구경제라고 불리는 전통 산업을 대체하는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헬스케어 산업 내에서도 신경제가 부각되는 현상은 마찬가지다. 2020년 헬스케어 산업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가장 히트 친 키워드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원격의료'이다.

 

원격의료의 도입은 정해진 미래

원격의료의 도입은 사실상 정해진 미래와 다름없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수급 불균형이다. 인규의 수명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전 세계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의료 수요와 의료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의료 공급은 의료 수요에 발맞추어 빠르게 진행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의사를 육성하는 데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국가에서 의료 수요와 공급은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하다면 수요를 줄이든가 공급을 늘리든가 진료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헬스케어 산업 특성상 의료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의료 수요를 줄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진료 회전율을 높일 수 있는 원격의료는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설루션이다.

 

가장 앞서 준비하는 중국

가장 앞서 준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2010년 후반부터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중국은 온라인 진료가 가능한 온라인 병원 허가제도, 한 명의 의사가 복수의 병원에서 근무가 가능한 다점집업, 병원끼리 파트너십을 통해 병상과 의료진과 환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의련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원격의료에 우호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19년 8월부터 원격의료에 대한 공보험 급여 혜택 가이드라인을 제정했고 온라인으로 처방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원격의료의 훌륭한 촉매

그러나 원격의료의 확산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해 심리적 장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이 얼리어답터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확산되려면 시간과 함께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특히 헬스케어 산업은 관련 이해관계자가 매우 많은 복잡한 산업이다. 모든 산업 참여자들을 움직일 만한 동기부여는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원격의료의 훌륭한 촉매가 됐다. 의료 공급자와 의료 수요자 모두에게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을 원격의료는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원격의료 확산에 크게 두 가지 기여를 했다. 

  1. 첫째, 긍정적인 사용자경험이다. 원격의료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의료 공급자와 의료 수요자 모두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 긍정적인 사용자경험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2. 둘째, 우호적인 정책 변화이다. 헬스케어 산업은 규제 산업이다. 공보험이나 규제기관의 적극적 대처가 없다면 특정 기술이나 솔루션은 확대되기 힘들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세계 각 정부가 원격의료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원격의료는 의료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격의료는 초기에 응급환자 스크리닝, 진료나 진단이 필요 없는 경증질환 진료에 활용됐으나 정신질환, 가정용 의료기기와 연계한 만성질환 환자의 모니터링, 정기상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0년 8월 5일에 미국 최대 원격의료 기업인 텔라닥은 만성질환 관리용 솔루션 제공업체인 리봉고를 185억 달러에 인수하는 초대형 인수합병 뉴스를 발표했다. 원격진료 플랫폼인 텔라닥이 만성질환 관리 영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원격의료의 미래

1. 원격의료를 도입한 이유

원격의료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된 국가는 미국과 중국을 꼽는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이전부터 원격의료가 부각되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 이전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의료수급 불균형 해소

가장 중요한 원격의료의 효용은 의료수급 불균형을 해결해 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격의료를 통하여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진료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 인류의 수명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전 세계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의료수요 및 의료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빠르게 증가하는 의료수요에 비해 의료공급은 빠르게 진행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의사를 육성하는 데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수련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료 수요와 공급은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미국에서는 2033년 13만 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재 주치의가 없는 성인인구가 26%에 달한다. 중국은 1,000명 당 의사수가 OECD 평균인 3.4명을 크게 하회하는 1.8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는 병원 예약 후 방문까지 가정의학과 기준 최대 60일을 넘기는 경우가 있다고도 한다. 중국은 3시간을 기다려 8분 정도의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2) 의료비용 절감

이뿐 아니라 원격의료는 직간접 의료비용을 감소시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높은 의료비용으로 악명이 높은 미국에서 유용할 수 있다. 미국은 공공의료 영역과 민간의료 영역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롤 의료비용 통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간의료 영역은 민간기업에 의해 시장경제 논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격의료는 시장경제 논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경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거치지 않는 응급실 방문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방식 등으로 불필요한 의료지출을 줄일 수 있는 효용이 있다. 즉 원격의료는 기존 헬스케어 산업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의료비용을 낮추는 목적을 달성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원격의료는 의료수급 불균형 해소와 비용절감을 위해 도입되었다. 즉 원격의료 그 자체를 위해서 원격의료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2. 미중 원격의료 업체들의 3단계 성장 전략

기업 입장에서 원격의료 사업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을까?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현상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원격의료 사업 업체들은 어떤 가능성을 보고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대체로 원격의료 업체들을 살펴보면 가입회원수와 이용률이라는 지표를 발표한다. 왜 가입회원수와 이용률이라는 지표를 발표하는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 원격의료 기업들이 사용한 전략을 미국과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알아보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격의료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최대한 가입고객을 확보하고 이용률을 높인 후 해외로 확장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1) 원격의료 성장 전략 1단계

원격의료 성장 전략 1단계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원격의료로 모든 진료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 산업은 규제 산업이고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기술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그리고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존재하는 대면진료 대비 원격의료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도 또 다른 중요한 장벽이다. 이러한 규제, 기술, 그리고 심리적 거부감 같은 제한사항을 만족할 수 있는 질환은 경증질환이다.

 

그런데 원격의료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으로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된다. 원격의료 자체만으로는 사업 초기에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1. 첫 번째 문제는 수요다. 경증환자 특성상 수요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어렵다.
  2. 두 번째는 고가의 진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원격의료는 경증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음성과 화상을 이용한 진료라는 특성상 CT나 MRI같은 고가의 진료가 어렵다. 대부분 원격진료 한 건당 진료가격은 몇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하면 원격의료는 의사와 환자를 매칭하는 의료 플랫폼이다. 플랫폼 사업자가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기 어렵다는 것은 시장참여자인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플랫폼 사업자로서 협상력이 약해진다는 의미다. 고객들이 많이 모이지 않으면 의사들과 유리하게 가격협상을 하기 힘들다. 반대로 의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고객들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따라서 사업 초기에는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고객수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원격의료 업체인 텔라닥과 평안굿닥터의 전체 매출에서 원격의료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2020년 텔라닥의 원격의료 매출은 전체 매출의 19%, 평안굿닥터의 원격의료 매출은 23%에 불과했다. 그럼 나머지 매출은 무엇일까? 여기에 기업들이 플랫폼 참여자들을 확보한 해답이 숨어 있다.

 

미국 원격의료 업체인 텔라닥이 선택한 방식은 구독 모델이다.

  • 테라닥은 개인 고객보다는 보험사나 기업체와 계약을 맺어 직원수나 고객수에 비례한 월 사용료를 받고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 2019년에 텔라닥의 고객수는 2018년보다 무려 2,370만 명이 증가했다.
  • 이는 미국 최대 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UNH)과의 계약으로 1,500만 명의 추가 고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 이런 식의 B2B 모델을 활용해 빠르게 고객수를 늘려 원격의료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의사들과의 협상력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 기업 고객을 공략하는 이유는 기업이 직원의 연간 보험료의 70% 이상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 현재 미국 자체 보험을 운영하는 미국 대기업들의 84% 정도가 원격의료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평안굿닥터는 중국 빅 3 보험사이자 모기업인 평안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 평안생명보험 앱을 통해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평안보험 고객 전용 상품인 헬스 360을 출시했다. 해당 상품은 보험 가입자에게 우선 예약권과 진료권을 제공하는 혜택을 부여한 상품이다.
  •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는데 주력 고객은 평안보험그룹사 임직원이다.
  • 평안보험 네트워크를 활용해 2020년 말 기준 미국 전체 인구보다 큰 3억 7,28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 온라인 약국이나 비 평안보험 고객사 확보 등으로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 이는 다시 평안보험 고객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커 상호 간의 높은 시너지가 기대된다.

 

(2) 원격의료 성장 전략 2단계

원격의료 성장 전략 2단계는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시장참여자를 충분히 확보했다면 이제 시장참여자들이 플랫폼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원격의료 플랫폼의 이용률을 높이는 것은 플랫폼의 지속성을 위해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원격의료가 통상 감기나 피부 트러블 같은 경증환자 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기적으로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코로나 이전 미국 원격의료 업체들의 평균 이용률은 2~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텔라닥과 평안굿닥터는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의 텔라닥은 주력인 응급진료 서비스 외에 정신건강과 2차 소견 서비스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 최근에는 영양상담과 소아청소년과 제품을 추가했다.
  • 제품군 확대는 월 구독료와 이용률이 증가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 특히 정신건강은 반복수요가 존재하고 진료비가 비싸 가장 부각되는 적응증이다.
  • 정신건강의 대면진료는 보험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진료 방식이 상담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원격의료가 활용되기 유용하다.
  • 최근에는 병원용 원격의료 플랫폼 기업 인터치를 인수했다. 인터치의 플랫폼은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원격의료를 요청할 때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 이로 인해 텔라닥의 고객들은 코로나 이전 기준 산업평균인 2~3%를 훨씬 웃도는 9~10%의 높은 이용률을 보이고 있었다. 이 비율은 2021년 상반기 기준 21.5%까지 상승했다.

 

중국의 평안굿닥터는 고객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플랫폼 생태계 강화와 평안보험 외 고객 확대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 평안굿닥터의 일 평균 상담 횟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91만 건에 달하며 2020년 상반기까지 11억 건 이상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 다점집업, 의련체, 온라인 처방 의약품 배송 등 중국정부가 전향적으로 실행하는 원격의료 관련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원격진료, 예약, 처방, 온라인 의약품 배송에 이르는 원격의료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  원격의료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며 현재 3,000개 이상의 병원 네트워크(1,900개의 3급 병원 포함)와 상급 병원 소속의 의사 5,381면, 9만 4,000개의 약국 등을 확보했다.
  • 최근 푸저우 지방정부와 함께 지역 인터넷 병원 플랫폼을 론칭했다.
  • 기존 평안보험그룹 고객 전용 상품인 헬스 360 외에 비 평안보험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닥터 멤버십 서비스를 론칭했다.
  • 현재 멤버십 이용고객의 매출 비중은 원격의료의 59% 수준이다. 이들은 일반 고객 대비 평균 원격의료 이용 횟수가 2.7배 높다.

 

(3) 원격의료 성장 전략 3단계

원격의료 성장 전략 3단계는 '해외 확대'이다. 원격의료는 국가별로 규제가 달라서 직접 진출 전략보다는 제휴, 파트너십, JV, 인수합병 등의 전략이 주로 사용된다.

 

미국의 텔라닥은 인수합병과 파트너십을 활용해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텔라닥의 해외매출은 2017년 1,830만 달러에서 2020년 1억 2,520만 달러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목표 지역을 설정하고 있다. 현재 침투 가능한 시장에 1% 정도 침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평안굿닥터는 구체적인 해외사업 매출에 대해 공개하지는 않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코로나바이러스가 원격의료의 구조적 성장에 미친 영향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원격의료 업체들에게 상당한 매출증가 효과를 일으켰다. 실제로 미국의 텔라닥은 원격의료 수요가 폭증하며 2020년 원격의료 매출이 약 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대비 130% 상승한 수치였다. 그런데 원격의료가 확대된 가장 큰 이유는 치료 목적보다는 감염회피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원격의료의 효용을 체감한 것은 맞지만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의료 수요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종료되면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원격의료 업체들에게 미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1) 시장 확대 가능성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바로 시장 확대 가능성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미국 원격의료 업체들은 공보험 시장 침투가 이전보다 쉬워질 수 있고 원격 모니터링 확대로 인한 수혜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가장 큰 구조적인 변화다.

 

미국 건강보험 시장은 공보험, 민간보험, 그리고 기업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기업 자체 보험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나라 공보험 시장의 진입은 매우 까다롭다. 미국에서 임상 데이터나 아직 근거가 부족한 초기 헬스케어 제품과 서비스는 기업 자체 보험 시장에서 성장한 후 근거를 확보해 공보험이나 민간보험 시장으로 확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의 원격의료 업체들도 기업 자체 보험 시장과 민간보험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공보험 시장에서도 원격의료에 전향적으로 급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공보험의 원격의료 확대 정책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나면 다시 축소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꾸준히 의료비용 절감 효과에 대한 실세계 데이터를 확보해 나간다면 코로나바이러스 이전보다 훨씬 공보험 시장 침투가 용이해질 수 있을 것이다.

 

(2) 원격 모니터링의 활성화 가능성

또 하나의 구조적인 변화는 원격 모니터링의 활성화 가능성이다. 원격 모니터링은 원격의료와 연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료 서비스다. 원격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장비와 솔루션이 확대되고 그것을 인정하는 보험사나 병원이 많아질수록 원격의료 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원격의료만큼 원격 모니터링에 대해서도 상당히 전향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기존에는 병원 내에서만 쓰였던 장비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던다, 가정용 의료기기로 사용되던 장비를 병원 내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또한 의사들은 원격 모니터링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2020년 4월에는 당뇨 환자 모니터링기기를 병원 내에서 사용하는 것을 임시 허가했다. 쉽게 말하면 응급실이나 병실에서 연속혈당측정기나 자가혈당측정기를 활용한 모니터링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미국 내 1형 당뇨 환자는 3,200만 명으로 추정되고 병원 내 환자 시장은 1,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것이 임시조치인 만큼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나면 이전 규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환자와 의료진 모두 생각보다 괜찮은 사용자 경험을 획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4. 원격의료의 미래

(1) 기존 의료 시스템과의 결합

원격의료는 경증질환자를 중심으로 의료비용 절감과 의료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활용되며 발전해 왔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공보험 시장 침투 가능성과 원격 모니터링 시장 확대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격의료의 구조적 성장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다면 원격의료가 장기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더 고려해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원격의료는 기존 의료의 특정 부분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원격의료가 더 진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의료를 대체하는 것에서 나아가 기존 의료와 연계를 강화해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현재 병원을 이용하지 않으면 원격의료를 활용해서 치료할 수 있는 적응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텔라닥은 2020년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허리 통증을 겪고 있는 애비라는 15세 여성이 원격의료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가상 사례를 공유했다.

  1. 애비는 텔라닥에 접속해 의사를 배정받고 상담을 시작함.
  2. 애비는 과거에 주치의에게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은 바 있음.
  3. 텔라닥은 10명의 전문의로부터 애비와 관련된 영상과 정보를 수집함.
  4. 이를 통해 애비의 허리 통증이 허리의 종양에 기인한 것을 찾아냄.
  5. 텔라닥의 전문의들은 지역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을 것을 권고함.
  6. 텔라닥은 소아 척추 전문의를 추천함.
  7. 애비는 수술을 받음.
  8. 텔라닥은 수술 후 심리 안정을 위해 애비에게 정신상담을 추천함.

 

여기서 핵심은 3. 번과 6. 번이다. 3. 번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다른 의료기관에 저장된 전자의무기록 데이터가 텔라닥과 공유돼야 하며, 6. 번이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지역 병원이나 보험사와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미래의 원격의료는 기존 의료 시스템이나 의료 데이터와 결합이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2) 두 시스템이 결합하는 과정

그렇다면 원격의료가 기존 의료 시스템과 의료 데이터와 결합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발생할까? 

  1. 첫째, 원격의료 업체와 기존 의료 시스템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원격의료 플랫폼을 구축하는 신규 업체들이다. 의료 시장의 핵심 이해관계자들인 병원들이나 보험사들이 언제까지 가만히 있으리란 법은 없다. 이들이 기존 역량을 활용해서 충분히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원격의료는 그때그때 진료가 가능한 의사들과 환자를 매칭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의사와 환자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병원들이나 보험사들이 원격의료 플랫폼 기업처럼 그때그때 진료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편의성은 떨어지더라도 환자와의 관계성과 향후 치료 연계가 가능한 일종의 '주치의 서비스'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누가 최종적인 헤게모니를 가져갈지는 모르지만 지금 원격의료 업체들이 고객수를 확보하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지는 순간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 둘째, 수직적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원격의료 업체들의 인수합병은 수평적 인수합병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원격의료 시장 1위 업체가 보유한 고객사는 7,000만 명을 넘어섰고 제공 가능한 서비스 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일어나는 인수합병은 수직적 인수합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예 보험사나 병원 등 의료 시스템의 가치사슬상에서 인수합병이 일어나는 것이다. 중국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평안굿닥터의 모기업은 보험사인 평안보험이며 알리헬스의 모기업은 인터넷기업은 알리바바이다.
  3. 셋째, 첨단 의료기기의 발전이 요구될 것이다. 
  4. 넷째, 새로운 규제와 합의가 필요해질 것이다. 5G와 센싱 기술, 로봇제어 기술과 같은 혁신 기술이 도입되려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격수술을 진행하는 도중 갑자기 원격접속이 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헬스케어는 기술만큼이나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

 

(3) 의료 데이터

사람들이 원격의료에 관심을 가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의료 데이터다. 원격으로 진료를 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수록 의료 데이터가 풍부해질 것이라는 가설이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격의료에는 의료 데이터인 전자의무기록에 관한 이야기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전자의무기록에서 파생되는 의료 데이터로 인한 2차 부가가치에 대해서 분석하다 보면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전자의무기록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실제 임상 현장을 살펴보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전자의무기록이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이터 정량화의 어려움, 데이터 표준화의 어려움, 적절한 보상 체계의 구축의 어려움이다.

  1. 첫째, 데이터 정량화의 어려움을 살펴보자. 그저 많기만 한 데이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데이터를 의미 있게 사용하려면 디지털화를 해야 한다. 진료 시 환자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뻐근하다, 간지럽다, 찌릿찌릿하다 같은 정성적인 것들이다. 디지털화를 하기 위해서는 정량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텍스트 형태의 기록을 구조화해 정량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전자의무기록에 있는 데이터의 80%가량은 구조화돼 있지 않다. 병원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존재하는 수많은 데이터는 역설적으로 대부분 의미 있는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2. 둘째, 데이터 표준화의 어려움을 살펴보자.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원활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그 병원에 설치된 시스템의 종류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이 데이터가 연동돼야 한다. 그러려면 데이터가 표준화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전자의무기록 도입 정책을 시도한 미국조차 데이터의 표준화가 잘돼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FHIR 표준에 맞춰 전자의무기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까지 설치된 것 중에서 FHIR에 맞춰 설계된 시스템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3. 셋째, 데이터 수집을 위한 적절한 보상 체계 구축의 어려움을 살펴보자. 전자의무기록 데이터를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병원마다 흩어져 있는 데이터들을 모아 빅데이터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들이나 기업들이 자신들의 시스템에 축적한 정보를 다른 병원, 개인, 연구자,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려고 할 것인가이다.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얻는 혜택이 크지 않다면 공유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데이터들은 모두 개인에게서 나온 의료정보라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 이슈와 어긋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 데이터들을 활용해 제삼자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데이터를 생산한 개인에게 어떻게 보상을 해줄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따를 것이다.

그저 많기만 한 데이터는 가치가 없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적어도 세 가지 문제점인 정량화, 표준화, 데이터 수집을 위한 동기부여 등이 해결돼야 한다. 아직까지 전자의무기록을 도입하는 것은 병원 입장에서 명확한 투자회수 시점을 알기 어려운 투자에 가깝다.

 

(4) 필팩의 진짜 가치

미국 기업 필팩은 약을 개별포장해 원격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는 아마존이 인수한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필팩의 혁신은 원격 의약품 배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품 개별포장에 있다. 

 

의약품 배송 서비스는 미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쓰여온 제도이다. 미국은 의사 판단에 의해서 동일한 처방전으로 여러 번 약을 탈 수 있다. 이것을 리필(Refill)이라고 한다. 리필이 가능한 의약품은 우편 형태로 원격배송이 가능한데 우편 주문 서비스(Mail-order Pharmacy)라고 한다. 이것을 서비스하는 기관이 익스프레스스크립츠, CVS 케어마크, 옵텀과 같은 보험약제 관리기업이다. 즉 미국에서 의약품 배송 서비스는 리필이 가능한 의약품에 한해 오래전부터 사용됐던 서비스이다.

 

필팩은 추가 비용이 없다고 광고를 하고 있다. 추가 비용 없이 의약품 배송 서비스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우편 주문 서비스를 하는 온라인 약국은 보험사가 보험약제 관리기업에게 전해준 의약품 가격과 환자의 자기 부담금으로 이익을 창출한다. 오프라인 약국처럼 부동산이나 기타 간접비용이 들지 않으니 오히려 이익률을 높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필팩은 기존 의약품 배송 서비스 업체들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필팩은 회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약을 개별포장하는 것이 차별화다. 미국 헬스케어 산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의약품 위해 사례(Adverse Drug Event)이다. 미국의 의약품 문화는 우리나라처럼 포장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약통에 약을 통째로 담아서 주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약을 용법에 맞게 먹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필팩의 가치는 약을 개별포장함으로써 2개 이상의 약을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자의 위약품 위해 사례를 최소화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원격의료가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는 것만큼 원격 의약품 배송 역시 상당히 관심이 높은 사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필팩의 진정한 가치는 의약품 배송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의약품 원격배송은 이미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서비스였다. 원격의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잘못된 분석으로 인해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 김충현 <의료기기 산업의 미래에 투자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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