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이 말하는 레버리지
1.
우리가 계속해서 보수적인 재무 정책을 유지한 것이 실수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돌이켜 볼 때 버크셔의 부채비율이 통상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면 우리 수익률은 실제로 거둔 연 23.8%보다 훨씬 높았을 것입니다. 1965년 당시에도 우리가 부채비율을 높였다면 더 이득을 보았을 확률이 99%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내외적인 충격이 발생해 통상적인 부채비율 때문에 우리가 일시적인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 파산할 확률이 겨우 1%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1% 확률도 원치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고통이나 치욕을 당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추가 수익의 확률이 높더라도 상쇄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분별 있는 행동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대개 부채를 사용하면 일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찰리와 나는 크게 서둘러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훨씬 더 즐깁니다. 아울러 그 결과도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인수나 사업 목적으로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킬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업계에서는 우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적정 레버리지를 일으키면 안전하게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수십만 투자자 중 버크셔 주식이 재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주가 많아서, 회사에 재난이 일어나면 이들도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가 50년 이상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영구 상해 고객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포함한 고객들에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한다고 약속했습니다. 금융공황, 주식시장 폐쇄, 심지어 미국에 핵·화학·생물학 공격이 발생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대규모 위험을 기꺼이 인수합니다. 실제로 단일 재해에 대해 판매하는 보험은 우리 한도가 다른 어떤 보험사보다도 높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대규모 투자 포트폴리오도 1987년 10월 19일(검은 월요일) 같은 특정 상황에서는 시장가치가 단기간에 극적으로 하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버크셔는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순자산, 이익 흐름, 유동성을 유지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어렵게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장기간 연속해서 인상적인 실적을 올렸더라도 한 번만 0을 곱하면 모두 0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 자신도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지만, 내 탓에 다른 사람들이 이런 손실을 보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습니다.
3.
레버리지를 사용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레버리지를 사용하다가 알거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레버리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이익이 확대됩니다. 배우자는 당신이 똑똑하다고 여기고, 이웃들은 당신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레버리지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레버리지가 불려준 이익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레버리지의 매력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숫자를 여럿 곱해도 그중 0이 하나라도 있으면 곱은 0이 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레버리지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사용하더라도 0을 만들어낸 사례가 너무도 많습니다.
4.
부채는 회사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흔히 부채가 많은 회사들은 만기가 되면 다시 돈을 빌려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가정이 평소에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간혹 회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세계적으로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만기에 돈을 빌릴 수 없습니다. 이때는 현금이 있어야만 부채를 상환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이때 회사들은 신용이 산소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산소가 풍부할 때에는 사람들이 산소를 무시합니다. 그러나 산소가 부족해지면 사람들은 산소만 주목합니다. 신용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는 신용을 잠시만 유지하지 못해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08년 9월 여러 산업에서 하룻밤 사이에 신용이 사라지면서 미국 전체가 하마터면 무너질 뻔했습니다.
5.
찰리와 나는 버크셔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거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평생 모은 돈 대부분을 우리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습니다. 단지 추가 수익 몇 포인트를 얻으려고 이 모든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입니다.
우리는 현금 대부분을 단기 국채로 보유하고 있으며, 수익률이 조금 더 높은 다른 단기 증권은 피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어음과 MMF의 취약성이 명백하게 드러난 2008년 9월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가 고수해 온 정책입니다. 우리는 투자저술가 레이 데보의 말에 동의합니다. "강도에게 빼앗긴 돈보다 수익률을 높이려다 날린 돈이 더 많다."
레버리지를 이토록 경계하는 탓에 우리는 수익률 면에서 약간 손해를 봅니다. 대신 막대한 유동성 덕분에 두 다리 뻗고 편히 잡니다. 게다가 간혹 발생하는 금융대란 기간에 다른 기업들은 허둥지둥 생존을 도모하지만, 우리는 막강한 자금과 냉정한 태도로 공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08년 리먼 파산에 이은 공황 25일 동안 우리는 156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6.
장기적으로 가치가 계속 증가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무작위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버크셔입니다. 지난 53년 동안 버크셔는 이익을 재투자하여 복리의 마법을 이용한 덕분에 가치가 계속 증가했습니다. 버크셔의 가치는 해마다 상승했습니다. 그런데도 버크셔의 주가는 네 번 폭락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나는 주식 투자에 차입금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주가가 단기간에 얼마나 하락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입금이 소액이어서 주가가 폭락할 때 포지션이 크게 위험해지지 않더라도, 무시무시한 주요 뉴스와 숨 가쁘게 쏟아지는 방송을 보면 사람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는 좋은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향후 53년 동안에도 버크셔, 그리고 다른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을 맛볼 것입니다. 언제 폭락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녹색인 신호등은 언제든 황색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적색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입금에 발이 묶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주가 폭락이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 워런 버핏 원저, 로렌스 커닝햄 편저 <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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