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철학
비판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지닌 투자자가 되는 길
한편 철학은 한 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에 가장 어려운 분야기도 하다. 바로 철학은 우리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과학과 달리 철학은 절대적인 답이 없고, 미리 정리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들 대다수는 양자역학이 무척이나 배우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만약 기본 개념만 제대로 익힐 수 있다면, 미래의 과학이 새로운 진리를 밝혀내지 않는 한, 알아야 할 핵심은 이미 알고 있다고 확신하며 계속 나아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단 우리가 자연선택과 유전학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진화의 본질을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에는 그런 절대적인 것이 없다. 철학이 가진 그 어떤 진리도 본질적으로는 사적이고 개별적이며, 그것을 추구해온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이런 사실이 우리가 철학을 공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떤 사람은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철학은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온전히 그대로 이전될 수 없다. 누가 처음 말했든 철학의 교의가 우리 것이 되려면 우리의 경험, 믿음, 해석이라는 인지적 여과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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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철학적 탐구 영역을 간단히 분류해보면 크게 세 가지 큰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세상의 보편적 본질에 관한 비판적 사고인 형이상학(metaphysics)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물리학은 물리적 세계, 실재하는 물체, 자연의 힘에 대해 탐구한다. 물리학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들에 관해, 경사면과 자유 낙하하는 구슬에 관해, 태양과 달을 지배하는 운동법칙에 관한 연구다. 형이상학은 '물리학을 넘어선(beyond physics)'이란 뜻이다.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 질문을 논할 때, 그들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으로부터 독립된 생각들을 말한다. 신과 사후세계 같은 개념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책상이나 의자처럼 실재하는 사건이 아니라 자연 세상과는 동떨어져 존재하는 추상적 생각이다. 형이상학적 질문을 놓고 논쟁하는 철학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존재는 흔쾌히 인정하지만, 세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철학의 두 번째 분야는 미학, 윤리학, 정치학이라는 서로 연관된 세 영역을 탐구한다. 미학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론이다. 미학을 공부하는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사람들이 관찰하는 물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느끼는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미에 대한 탐구를 피상적 연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방식이 우리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판단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철학 분야다. 윤리학은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지, 어떤 행위가 적절하고 어떤 행위가 부적절한지 묻는다. 윤리학은 사람들이 행하는 활동, 사람들의 판단, 사람들이 갖는 가치, 사람들이 성취하려 하는 품성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정치 철학은 윤리학의 사상들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윤리학이 사회 수준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탐구한다면, 정치 철학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어떤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이런 사회적 구조와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논쟁한다.
철학의 세 번째 분야는 인식론(epistemology)으로, 지식의 본질과 한계를 탐구한다. 인식론이란 용어는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episteme와 문자적으로는 '담론'을 의미하지만 대체로 일종의 공부나 지적 탐구를 뜻하는 logos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인식론은 지식의 이론에 대한 탐구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인식론적 질문을 할 때, 우리는 생각에 관해 생각을 하는 것이다.
p.182, 183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획득 이상이다. 나아가 생각하는 과정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다. 잘 생각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혼란과 소음, 모호함을 더 잘 피할 수 있다. 가능한 대안들을 더 잘 인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뢰할 만한 논거를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투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투자를 어떻게 하는지를 결정한다. 만약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식론적 틀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사고 과정이 엄격하고 일관성이 있는지를 항상 들여다볼 수 있다면, 꾸준히 투자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p.184, 185
하지만 재기술이 과학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재기술은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다. 무언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기술해놓은 것을 바꿔가며 재기술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균형이론의 틀에 갇혀 주식시장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기술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해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주식시장이건, 사회나 정치 시스템이건, 물리적 세계이건 간에, 복잡해보이는 시스템을 새롭게 기술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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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의미의 철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트겐슈타인은 매우 단순한 삼각형을 그렸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측면들을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삼각형을 삼각 구멍으로, 물체로, 기하학적 그림으로 볼 수도 있고, 그 밑변 위에 서 있는 것으로, 그 꼭지점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하나의 산으로, 쐐기로, 화살이나 포인트로 볼 수도 있고, 직각을 끼는 보다 짧은 변이 서 있어야 할 것이 가령 넘어진 물체로, 반쪽짜리 평행사변형으로 등등 여러 가지 것들로 볼 수 있다. (중략) 당신은 그 때 한 번은 이것을 또 한 번은 저것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한 번은 이것으로, 또 한 번은 저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당신은 그것을 한 번은 이렇게, 또 한 번은 저렇게 볼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선택한 낱말에 의해 실제가 형성된다는 자신의 믿음을 설득력 넘치게, 시적이기까지 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언어가 의미를 만든다.
p.192
메타피지컬 클럽의 활발한 토론과정을 통해서 퍼스는 자신의 이론을 재정의하고 다음과 같은 명제를 도출했다. 사람들은 사고과정을 통해 의문을 해결하고 신념을 형성한다. 이후 신념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이것은 습관이 된다. 따라서 신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은, 신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신념에서 나온 행동을 보아야 한다. 그는 이 명제를 '실용주의'라고 불렀다. 실용주의는 '실천(practice)'이나 '실질적인(practical)'과 동일한 기원을 갖는 용어인데, 어떤 사유의 의미는 그 사유가 가져온 실제적 결과와 동일해야 한다는 자신의 관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사유는 그것의 실제 결과에 대한 우리의 사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1878년 <우리 관념을 명확하게 하는 법>이란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사유의 중요한 기능은 행동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사유의 의미를 밝히려면 그저 그것이 어떤 습관을 만드는가를 알아내면 된다. 어던 사물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 가져오는 습관과 같다."
p.201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로버트 해그스트롬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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