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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비도 오고 그래서

by 고니과장 2019. 9. 28.

출발할 때 날이 흐리다 싶더니 앞유리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원래도 운전 중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편이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우울한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두 여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여자 동기의 얼굴.

 

보드를 따고 여자 동기들은 팰로우 혹은 봉직의로 커리어를 바로 시작했고, 그런 동기와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돈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녀는 수련 과정동안 한푼도 안쓰고 모은 월급이 꽤 되다보니 이제부터 경제공부를 해서 본인도 자기 집을 소유하고 싶다고 했다. 대단했다. 수련 과정동안 한푼도 안쓰고 모았다니. 나는 빚만 1억인데. 정말 열심히 모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돈은 그녀가 노력하여 모은 게 아니었다. 순간 어떻게 이런게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면 돈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그녀와 나의 수저가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저 차이를 떠올리자 마자 모든 게 다 해결되기 시작했다. 부모님덕에 강제적으로 엄카로 소비생활을 하며 본인의 월급은 단 한푼도 쓰지 않고 모을 수 있었고, 지나고 보니 그 금액이 꽤나 큰 것이다. 그녀가 그 돈을 어떻게 쓸 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빚을 가진 내 입장과 비교되었다.

 

며칠 전 고향에 다녀왔다.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웠던 것은 아니다. 대출 신청을 부모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어 내가 해결해주기 위해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신청이 끝나고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를 넌지시 물어왔다. 여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돈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집에서 가져다 쓴 돈이 얼마인가. 내 빚의 대부분이 무엇 때문인가. 

처음 돈을 벌 때는 대수롭지 않게 돈을 드렸다. 필요하다고 하셨으니 어디에 쓰시는지도 묻질 않고 돈을 드렸다. 나도 어느정도 경제관념이 생기고는 돈을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집안 사정을 알다보니 차마 모른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내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건가. 생활고를 겪는 것도 아니고, 헛된 욕망과 턱없이 부족한 메타인지 덕분에 발생하는 비용을 내가 부담해야 하는건가. 이런 이유들로 개룡의들이 힘들게 산다는 것을. 그래서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누누히 들었고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편치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부모와 연을 끊는데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고 1억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간단히 연을 끊을 줄 알았던 그마저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연을 끊어낼 수 있었다. 나는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비가 거세게 내린다. 나의 복잡한 기분도 이 비에 씻겨내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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