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
- 네이버카페 부동산스터디 '가난해도 부자의 편에 서라'님
(출처: https://cafe.naver.com/jaegebal/934929)
※ 스크롤 주의! 총 8부작을 한 곳에 모아둬서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1 (마이너스~5.000만 원 구간)
마이너스~5,000만 원 구간, 27~31살
1. 가장 벗어나기 힘든 마의 구간임.
2. 인생 자체가 '늪'. 그 누구도 구원의 밧줄 하나 던져 주지 않음. 자주 듣던 노래조차도 조관우 '늪'이었음
3. 반지하, 옥탑방 전전. 반지하 문 열쇠 돌릴 때 내 자존감도 반지하로 추락함. 손낙구 책 보면 토굴에 사는 사람도 많다했는데 그나마 서울이라 토굴이 없어 안 들어 감
4. 모든 결정은 '가장 싼 거 , 가장 양 많은 거, 가장 오래가는 거'
5. 급여 들어오면 5일 이내 '오링'을 경험하게 됨
6.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시티카드에서 총액 900만 원짜리 카드 발급받을 때 너무 좋았음. why~? 최소 5개월은 버틸 수 있으니깐ᆢ(이해 안 됨 pass)
7. 성격이 굉장히 다혈질임. 사소한 것도 싸우려 함(논쟁에서 지지 않으려 함). 지금 생각하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음.. (가부줄 인생 흑역사 시절임)
8. 자동차는 문둥이 ' 중고 현기차' 여러 대를 경험하고 야메로 고치는 법을 배우게 됨.
9. 가장 불쌍한 애들은 시골에서 공부 좀 해서 서울로 유학 와 겨우 학교 졸업했는데, 중소기업 취직해 전세대출도 안되어 월세 살면서 자취하는 사람들. 돈이 붙어 있을 틈이 없음.(13~14년 전에는 전세금 대출이 어려웠음)
10. 회식 날은 기 충전의 날.
11. 새벽 별 보고 출근하고 저녁달보고 퇴근함.
12. 없는 돈에 뭔 넘의 경조사는 그리 많은지...
13. 옷은 윗도리 3개, 바지 2개, 마이 2개가 전부임. 마이 하나는 은갈치였음^^. 모르면 pass
14. 암보험 하나는 꼭 들었음.(암 걸렸는데 돈 없어 치료도 못 받을까 봐--)
15. 황학동 중고책방 및 동네 리사이클 가게 단골이 됨. 동네 고물상만 가도 은근 득-템 할 것 많음
16. 짝퉁 까르띠에 차고 다님. 그래서 이 시계 차고 나온 사람 보면 옛날 내 모습이 떠올라, 핏~썩소 날림
17. 꼭 보험 하는 동기 놈이 있어서 없는 돈에 3~40 삥 띠낌. 담에 보험사 사장새이들 만나면 대갈통을 지어 박고 싶음
18. 맞고 틀림보다는 옳고 그름을 논함. 세상에는 돈 많은 도둑놈과 돈 없이 성실한 사람만 존재한다고 믿음
19. 이력서가 9가지 종류로 있었음.(대형건설사. 단종사. 중견 건축자재. 양회회사. 레미콘회사. 기타 잡회사ᆢ등등)
20. 잘 나가는 시골 친구들 안 만나게 됨(지금 생각함 잘 나간 것도 아닌데도 그땐 그랬음)
21. 주 이용 인터넷 카페는 네이버 중고나라. 다음 짠돌이카페였음. 특히 짠돌이 카페 실패담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받았었음
22.1억이란 돈은 꿈의 숫자였음ᆢ공이 몇 개여~
*결론*
거지 같이 살았고. "걸리기만 해 봐~!"의 독기 및 냉소로 가득했으며. 휴~한숨이 끊이지 않는 시기임. 생각하기도 싫음 진절머리가 남! 에~휴..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1 (마이너스~5.000만 원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2 (5.000만 원~1억 구간)
5,000만 원~1억 구간, 31살~33살 초
1. 28살 취직한 회사에서 파견한 현장 숙소 생활을 한 이후에야 겨우 백단위 이상의 돈을 모울 수 있게 됨.
2. 그전에는 100만 원 이상 통장에 있어 본 역사적인 사실이 없음. 난 지금도 백단위가 억 단위보다 크게 느껴짐.
3. 드디어 30살 무렵에 거금 1천만 원이 모아짐.
4. 31살 시절에 결혼은 해야겠고 모아논 돈은 없고, 한참 SH(당시:서울도시개발공사) 임대 아파트 및 임대 주택(다가구 인수해서 싸게 주는 것)을 알아보았으나, 젠장~ 난 100년 후에나 공공 임대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음. 청약 넣어본 분들은 무슨 뜻일지 알 거임. 모르면 pass
5. 당시 시대상은 전세자금 대출이 무척 까다로웠음. 아니었더라도 내 신용도에는 전세자금이란 건 불가능.
6. 어느 날 중계동 까르프(당시:까르프. 현:홈플러스)를 다녀오는 길에 중계역 방향으로 걸어가던 중. 우연찮게 부동산에 전세가격 알아보러 들어감.
7. 가진 게 없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져 기어들어가는 파리 소리로 "앵앵".. 거림.. 그랬더니 부동산 사장님이 "거 뭐래는거요~? 그래서 얼마가 있다는 거요~?"라고 했음.. 난 더 작은 목소리로.. 그러니깐.. 음.. 음 "천오백 정도 있소요~" 공손히 손을 모아 대답함.
8. 그랬더니 마침 할머니가 사시다 돌아가신 집이 비워 있고 자녀분들이 유산 싸움 나 급매로 나온 게 있으니 1,500만 원 정도 있음 대출받아서 살 수 있다고 함. "~엥 집을 산다고요~?, 것도 대출을요" 전세금도 없고 대출받을 곳도 없으니 그냥 사는 게 낫다는 게 부동산 사장님의 말이었음.
9. 30분 만에 설득당한 나는 이미 부동산에 계약서를 쓰고 있었고, 심장의 출렁임이 자유수영 2시간 때린 정도였음. 집은 2층이었고 옛날 어르신이 쓰시던 물건 그대로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음. 두둥-여기가 중계동 중계그린 18평 첫 집임.
10. 집 산 얘기가 길어졌음. why~? 역사적인 날이었거든.. 이 집을 사지 않았으면 5,000~1억의 구간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는 가부줄의 인생이 없었을 수도 있음.
11. 웃긴 건 잔금 5천만 원도 안 되는 돈 나눠 갖겠다고 3명의 자식들이 와서는 서로 눈도 안 마주쳤음.
12. 집 사고 4개월인가 있다 결혼(31살) 했음. 당연히 양가에서 받은 건 zero 우리 집은 원래 없었고(내가 받은 축의금은 어머니 돌려주고 집 고치는데 쓰라 했음). , 처갓집도 없는 집에 고등학생이 막내둥이가 있었음(현 아시아나 스튜어디스임)
13. 결혼은 능동 어린이회관에서 했으며, 화환이 2개 왔었음. 초라했음. 상황 모르는 시골분들 "00 댁 막내아들" 성공해서 서울에서 장가갔다고 했음.--휴~ 암소리 안 하심 좋으렸만..
14. 기타 잡 회사를 2~3개 더 다니다 지금 업을 삼고 있는 중소기업에 입사를 함. 맞벌이 및 판매 수당이 있던 회사라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함.
15. 여전히 필요한 만큼의 돈이 없다 보니 "절약의 생활화"가 가훈 이었음.
16. 눈 떠보니 어느 날 부동산이 춤을 추기 시작함. 1주일에 800만 원씩 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직접 목격함. 옴마야~ 내 모은 건 1,500만 원 남짓이었는데 순식간에 순자산 5,000만 원의 구간을 휙~지남. <정말 신기했음>
17. 처음으로 눈을 뜸. 세상에는 근로 소득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로 소득 소득도 있음을... 어쩜 이 기이한 현상이 내 운명을 바꿀 수 도 있음을 직감했음.
18. "마이너스-5000"구간보다는 심적으로 훨씬 더 안정적이 되었으며, 전봇대 밑 강아지 풀도 아름답게 보였음. 히히^^
19. 종종 1층 할머니가 찾아와 선 낮에 쿵쿵 발소리 좀 내지 말라고 했음. 신기한 건 평일 낮엔 고양이 밖에 없었음에도..
20. 아파트 가격 상승 및 맞벌이로 어느 순간 순자산 1억 근처에 도달해 있었음. 8할은 아파트 가격 상승이었음. 난 깊은 고뇌^^(번뇌)를 하기 시작함.. 어찌하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있을까.....
-깊은 고뇌는 3편으로-
*결론*
"삶의 질-1, 거지의 삶"에서 첫 집을 구매 후 점점 인간다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불로소득이란 개념에 대해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구간임. 결혼을 하여 조금 덜 공격적이고, 플러스 통장으로 인해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음(물론 아주 미약하지만..), 올챙이 뒷다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임.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2 (5.000만 원~1억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3
1억 원~3억 구간, 32~34살
1. 깊은 고뇌 속^^에서 난 깨달음을 얻게 됨. 당시 서울평균시세가 1.900~2,000만 원 남짓. 년 물가 상승률 5% 적용. 평당 약 100만 원이 오를 거란 단순하지만 거창한 이론을 확립함.
2. 그럼 100평의 집만 소유해도, 년 1억 이익 발생. =100평 *100만 원. 헐 대박~ 10년만 지나도 10억의 불로소득 발행
3. 우하하하ᆢ어쩜 가난을 면할 단 하나의 길! 내 드디어 정립된 이론에 실체를 덧씌우기 시작함.
4. 급속히 부동산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함. 근 100권 이상.. 경매 강의도 들음. 신기한 건 지금은 생각나는 것도 없음. 그 와중에 부동산 티칭도 했었음. 돌이켜보면 창피함. 뭘 얼마나 안다고ᆢ
5. 재테크 책 중 젤 쉬운 건 바로바로~부동산 책. 젤 어려운 건 환율책이었음ᆢ뭔 소린지 원~
6. 부동산책 한 2ㅡ30권 읽었더니 ᆢ어느 순간 아~ 이정돈 나도 쓰겠다 싶을 때가 왔음.
7. 본격 낚시질 시작. 같은 아파트 22평 4층을 구매. 월세로 돌림. 당시 이자율 6.8% 정도였던 것 같음
8. 같은 아파트 1층 22평 구매. 월세로 돌림. 아파트 가격이 계속 상승시기라 기존 아파트에 추가 대출이 나오던 때임.
9. 고양시 덕양 화정동 27평 구매.ㅡ총 88평 만듦. 전부 월세로ᆢ가부 줄은 gap투자란 말이 있기 전에 이미 갭투자를 했음
10. 한 달 약 2~230만 원 정도 순이자비 발생.(받은 월세를 제외하고도ᆢ)
11. 33살 첫 딸이 태어남.
12. 이자를 감당해야 했기에 생후 1개월 된 애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맞벌이를 시작. 사실 항상 미안함
13. 난 정말 애기들을 싫어라 하는 스타일임. 오죽했음 시골집 갈 때 기차역이 가까운데도 꼭 버스 타고 갔음.(기차는 사람도 자주 바뀌고 애도 자주 울고 떠들고ᆢ등등)
14. 내 애기가 세상에 나와보니ᆢ약간 황당하기도 하고 꿈인 것 같기도 하고. 암튼 현실이 아닐 거라 부정했음.
15. 막상 키워보니 나를 바라보는 애기눈에 내 모습이 비쳤을 때. 늦은 밤 보채는 아기를 안고 재울 때 느꼈던 심장 박동소리. 잦은 고열로 아픈 아이를 보며 '아빠가 대신 아플게...'라고 되뇔 때... 아~나도 누군가의 아빠가 되었구나~하고 깨달았음.
16. 가부줄 이때 과천 xx 신규사업팀에서 call 받고 이직함. 중계동서 과천까지 출퇴근하다 죽는 줄 알았음. 졸다 눈뜨면 동대문이요 졸다 또 뜨면 사당인지라~
17. 같이 입사한 돌띠 녀석은 퇴근시간이 6시인데 그때부터 일을 시작한다 함. 난 퇴근해서 얼른 애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와이프는 당시 코엑스 귀금속상에서 일했었음), 이 문둥이 자식 모니터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세워 볼 때부터 뭔가 좀 이상타 했었음
18. 시작한 신사업도 어째 점점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음... 가부줄 스타일답게 굉장히 강하게 문제점들에 대해 설명했었음. 당근 '네가 뭔데~나대'란 분위기였음. 그래도 난 괜찮았음. 집값이 상승하고 있었으므로~
19.. 출퇴근도 멀지, 말이 좋아 대기업이지, 이 모지리들 사이에 있다가는 나 또한 바보가 될 것 같아 원래 중소기업으로 회귀함. 떠날 때 그 표정이 잊히지 않음. '너 가 뭔데...'란 그 뉘앙스의 표정들. 그 사업팀 2년 전인가 해체됨. 몇백억을 까먹고~~
19. 어느 순간 순자산이 3억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고... 그런데... 그런데... 세상사 그리 만만한 거 아님.
20. 젠장 2008년 리먼인지 라면인지 희한한 사태가 발생됨. 와우~가부줄 똥줄 타기 시작함. 부동산은 기가 눌리면 매매 자체가 안됨. 경험자는 알 거임.
21. 1년 1억 불로소득이 발생될 줄만 알았지 불로손실이 생길지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
22. 로또 용지에 동글뱅이 치는 날이 많아짐. 2, 5, 7, 15, 24, 37이 내 잭팟의 번호임. 로또의 끝은 항상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있다는 'jot도'를 외치는 것으로 끝남.
23. 다시 돌아온 회사에서 영업에 올인함. 까딱 잘못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짐을 알기에.
24. 어찌 됐든 가부줄 인생에서 가장 총명한 때임. 이렇게 공부했음 sky 중 ky는 갔을 거임.
25. 리먼 후 피해가 컸지만 3억 정도의 순자산을 이뤄냈었음. 가끔 맥주 한잔 마실 때면 이러다ᆢ나 진짜 10억 버는 거 아닌가~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임.
*결론*
고뇌 후 깨달음을 얻어 gab투자의 선봉에 섰었고 수익도 괜찮았지만 리먼사태 후 손실이 커지면서 2채를 처분함. 지지고 볶는 사이 1~3억의 구간은 이렇게 흘려감. 올챙이 뒤다리가 나옴.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3 (1억 원~3억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4
3억~6억 구간, 34살~38살
*오늘의 명언 :가난의 줄에 서면 고시원으로 향하고, 부자의 줄에서면 강남빌딩으로 향한다..^^
1. 3억 구간에서 부랴부랴 2개의 집을 정리하고 빚을 갚음. 졸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면 수익률이 좋았겠지만 사실 겁이 많이 났음. 매달 적금도 없이 이자비만 충당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음.
2. 36살에 중계동에서 일산으로 이사 감행.->집이 좁고 낡아서 일산 미분양 아파텔로 이사옮. 호텔 같은 집이라 너무 좋았음 그러나,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름. 사실 분당 사는 회사 동기(휘문고 출신-다음에 글을 한번 쓸 거임)가 분당으로 오라는 걸 고민하다 일산으로 자릴 잡음, 그때 분당으로 갔었어야 함.!!
3. 와이프는 삼성동에서 명동 성당 관련 종교 단체(명동 인근)로 이직함.
4.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와이프, 큰딸) 아침에 같이 출근함. 큰딸은 영락교회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할 때 와이프랑 지하철 타고 집까지 오는 생활을 반복함. 사실 이때 와이프가 굉장히 고생했음.. 참고로 가부줄 직장도 충무로 인근이었음.
5. 가부줄은 잦은 부도로 정상보다 1년 뒤늦게 과장으로 진급하였고, 나이 대비 굉장히 고소득 직장인이 됨.
6. 기존 중계동 집은 최초 18평만 남기고 모두 처분. 남은 현금의 일부는 당시 모네타에서 끗발을 난리던 "000 슬리퍼"의 글을 읽고 펀드에 투자하였고, 일부는 주식에 투자함 (주식은 3~4번의 상폐를 경험하였음). 주식의 수익률은 거지 같았지만 펀드의 수익율은 괜찮았음.
7. 빚이 없어지고 맞벌이를 하니 매월 많은 양의 현금이 쌓이기 시작함.
8. 어려운 시기도 지났겠다 빈손에서 5-6억 정도의 돈도 벌었겠다. 읽어놓은 잡지식도 있겠다~ 철없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망나니가 되어가고 있었고. 나보다 못한 친구들이랑 논쟁이 붙어서 싸운 적도 많았음. 전에는 없어서 무시받는다고 생각에 욱~해서 싸웠다면 지금은 "너넨 그 정도도 없냐~"고 순간순간 친구들은 무시했었음.(창피해 쥐구멍 있음 머리 들이밀고 싶음--).
9. 그 와중에 시골 친구 놈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지금으로 치면 "대깨문"인 친구랑 시비가 붙어서 주먹다짐을 함. 참으면 될 것을... 별 그지 같은 게 헛소리 한다는 생각에 치고받고 싸움. 이 싸움으로 많은 것을 깨달음. 아~ 친구여도 생각이 다름은 어쩔 수가 없구나. 내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나 잘났다 해 대던 내 모습이 엄청 후회스러웠음. 가끔 카페 글 읽다 보면 그때 내 모습으로 말하는 꼬맹이들 종종 있음.. 너 내도 철들면 지금이 얼마나 창피 한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속삭임.
10. 3~5억 넘어가는 순간이 가장 자존감 높은 시기이고, 또한 굉장히 위험성을 내포하는 시기임. 이 시기인 분들은 "자중" 또는 "겸손"이란 말을 해주고 싶음. 왜? 내가 그렇지 못해서 무척 후회스러웠으니...
11. 남자 나이 37살쯤이 되어도 면 대충 친구들의 사는 모습이 조금씩 고착화되기 시작함. 이 넘은 될넘 이넘은 뭘 해도 안될 넘. 답이 8할 정도는 나옴. 괜히 같이 있어 봐야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은 친구들은 차츰 멀리하기 시작함. 답 없는 친구들이 점점 불편해지는 시기가 도래함.
12. 나는 장례식장에 싸운 이후론 사적인 모임은 대부분 정리하고 없애 버림. 꼭 필요한 인사 치례만 하고 얼른 돌아와 버림. 어찌 보면 단절에 가까웠지만 집에 있는 시간도 많고 애들이랑 붙어 있어서 좋았음. 이 기조는 지금도 유지함. 주말에 절대 사적인 계획을 잡지 않음.
13. 궁핍이란 단어와 멀어졌고, 차는 중고 렉서스로 바뀌어 있었음. 그렇다고 명품 사대 거나 그렇진 않고 책을 사는 데는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생김.
14. 다음 카페 "텐인텐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꿈의 구간인 "10 in10"을 꿈꾸기 시작함. 점점 "짠돌이 카페"도 멀어지고 "텐엔텐+모네타"를 자주 들어가기 시작한 때임.
15. 친구들 사이에서 ooo돈 좀 벌었다더라 소문이 나는 시기이기도 함.(참고로 지역적인 편차가 있을 것임. 난 시골 면단위 출신이라 붇카페 회원들 수준보다 많이 낮음) 그 친구들한테 5-6억은 아마 평생 만져보기 힘든 금액일 수 도 있음.
16. 잘 나가는 내 친구 약사 놈은 이 당시 순자산 20억을 넘기고 있었음.(24시간 약국 및 건강보조제 인터넷쇼핑등)으로 나이대비 많은 돈을 벌었었음.
17. 이때쯤 되면 사실 인생에서 갖고 있는 스트레스 중 5~60%는 날아감. 살다 보면 돈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가 거의 대부분임.. 사람 때문에 생긴다고도 하지만 돈만 있음 그 사람 만날 필요도 없음.
18. 금전적인 생활은 많이 펴졌으나 업무적으로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을 때임. 인센티브가 있던 직장이라 매출을 올려야 하다는 욕심에 어쩔 수 없이 악성 한 테까지 자재를 줄 경우가 허다했음. 참고로 팀 내 매출 목표가 가장 높았었고 그걸 어떻게든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음.
19. 36살 둘째가 태어나고 와이프는 일을 그만둠. 전업 주부의 생활로 돌입함. 큰딸이 엄마랑 같이 있다는 것에 너무 행복해했었음. 깐난쟁이부터 종일 어린이집에 있다 보니 안쓰러웠던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림. 내 글 읽어보면 "수금 이야기-나를 죽인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에 나오는 주인공이 지금의 첫 딸임.
20. 책은 재테크 책보다는 예전 읽었던 사기. 군주론. 손자병법. 삼국지류의 고전 및 사업에 대한 책들을 주로 읽기 시작함.
21. 그리고 회사를 38살 퇴사함. 순자산은 6억이 조금이 넘기고 있었음. 퇴사할 때 사실 많이 두려웠음. 내 성격이 아무리 생각하면 바로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speed형 인간이지만 퇴사는 가족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 많이 힘든 결정이었음. 이 결정에 고민하는 분들 많이 계시는 줄 아는데 내 충분히 그 맘 이해함.~
*결론*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고랑에 빠졌고 가시밭길 헤쳐 나오다 보니 옷은 누더기요, 몸과 마음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생겼다. 천길 낭떠러지에 매달려 생과사의 순간까지 간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한낱 추억일 뿐...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과 용기이고.. 용기란 무서워도 한발 전진하는 힘!이라는 나만의 철학에 의해 무사히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날 수 있었음.
https://youtu.be/pXSNAF6 j8 aw
신해철-민물장어의 꿈
꼭-듣길 추천함.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4 (3억 원~6억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5 (6억~10억 구간)
6억~10억 구간,38살~40살
: 꽃은 피는 때가 다를 뿐이지 결국 꽃은 핀다.
1. 우하하하-내 드디어 10억.."별이 5개~ 돌 침대 보다" 무려 공이 4개나 더 많은 10억이라니.. 우하하하 내 세상을 다 가졌다. 아 하하하->이럴 줄 알았지?.. 풉~no no 사실은 무감각 해지고 12 억정 도가 넘을 때 아.. 맞다 나 10억 넘었네 뒤돌아 보게 됨
2. 평범한 직장인들이 그래도 도전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마의 구간이기도 할 것임.
3. "텐인텐"등은 가끔 들어가게 되고. "저 3x살에 3억 순자산 달성"이나 "고민을 상담하는 글이 올라오면", (음 그렇지 나도 그때 그랬었지.. 아니 아니 1번 집을 들어갔어야지.. 이그 모지라..)->이 지랄하고 있음.
4. 꿈 같이 느껴지던 그 금액에 도달하니, 어릴 적 그렇게 갖고 싶던 장난감도 가지게 되면 별 효용가치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심정이 됨. <엥 뭔 소리>?? 별 다를 바 없다는 얘기임.
5. 인생에는 단계별 계단이 있고 그 위에 올라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누군가 나 보다 훨씬 높은 계단에서 이런 글 쓰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쯔쯔쯔.. 저 돌띠 뭐라고 짓거리는 거여... : 놔둬요.. 저 때 다 저렇지 뭘~") 아마 이렇게 얘기하겠지..
6. 차는 렉서스를 처분하고 리스로 변경하게 되고, 와이프한테는 작은 RV를 사주게 된다.
7. 5~6억을 자력으로 벌어 본 사람은 어느 순간 아차 하고 지나는 게 10억 언저리쯤이고.. 만일 본인이 맨 주먹으로 10억으로 도달하였다면 엄청 칭찬받아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성공한 삶이다. 그 돈으로 서울에 집도 못 사네 이런 말은 필요 없다. 통계의 수치를 보더라도 상위 10% 이내 아닌가.…^^
8. 사실 가부줄은 이때 이 나라의 부동산은 끝났다고 설파하던 대인대인 ”선대인 선생”의 문하생을 자처하고 다녔었다.. 거짓말이냐고? 진짜임. ”야~ 말이 되니 땅도 아니고 네모 반듯한 실평수 25.4평 아파트”가 7억? 10억? 씩 한다는 게… 이르고 다녔다. 갈대 보다 더 빨리 휘어지는 게 사람의 신념이더라~ 지금은 또 정 반대이다. 이건 뭐 카멜레온 그 자체다..^^
9. 전세 살던 아파텔 <미분양> 건설사에서 집을 구매하던지 아님 이번을 마지막으로 전세 연장이 없다고 통보가 왔다.->거 얼마요? 분양가 2.8억인데 감가상각이 있으니 부가세 별도 2.1에 가지고 가란다. 콜~ 그 집 사서 2년을 더 살았다.->어쩔 수 없이 2 주택자가 되었다
10. 사업은 생각보단 잘 되어 급여 생활자들은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수입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쉽게 말하면 월에 e클래스 한대 정돈 벌었다.
11. 그래도 큰애 겨울 점퍼 사겠다고 들린 빈폴 매장에서 그나마 입힐 만한 옷이 30만 원은 줘야 돼서 사실 나나 와이프나 많이 망설였었다. 요새 몽벨인지 몽셀 통통인지 그런 얘기 들음 뭔 말인지 이핼 못함.
12. 경조사도 줄어들고 원체 절약의 습관인 부부라 통장 액수는 급격히 늘어 갔고..
13.. 세상사의 스트레스 지수는 급격히 하락. 행복감은 급 상승을 체감하였고, 금리가 내리니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는 현상과 비슷. "그대 행복하고 싶은가~? 그럼 돈을 버시라".. 나와 같은 루저는 이게 젤 큰 행복감을 갖게 했다.
14.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학부형이 되었고, 친구 넘 애들 “영어유치원+사립초교” 보낼 때 졸라 핀잔줬었는데.. 나도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후회도 밀려왔으나 동네 수준이 그 정돈 아니라 다행이었다.
15. 친구들의 삶은 37~38살까지는 그래도 지울 수 있는 4B 연필 이었다면 40살 언저리쯤 되면 이젠 지울 수도 없는 유성 매직의 그림들이 되어 갔고 그렇다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도 어려운 나이가 되어 버렸다.(37~40살의 모든 선택은 정말 잘해야 한다. 그 결정에 의해 삶의 모습들이 급격히 바뀔 수 있다.) 가부줄은 어찌 보면 행운아이다.
16. 이때쯤 되면 유산을 상속받지 않는 사람들 중에선 가장 잘 나가는 축에 속하는 사람 일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더 큰 금액을 갈망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는 때이다.
17. 암튼 전체적으로 평온함을 느끼지만 전과 별반 차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론**
6억대를 지나는 순간 결정적인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10억은 큰 문제없이 달성할 수 있다. 단 직업이나 소득에 따라 시간의 다름이지 결국 꽃은 피게 되어 있다. 내 경운 이 시기가 너무 훅~ 지나 버려 쓸 것도 많이 없다. 후에 다른 구간은 이것보다 더 쓸게 없다. 왜~ 더 훅~지나 버렸으니..
내 누누이 했던 얘기가 있다. 돈은 급격히 들어오니 돈을 담아낼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
개똥철학이지만 내 경험에 우러나온 얘기들이다.^^ 헤헤헤
팬텀싱어 '꽃이 핀다'
-노래 듣고 있는 거지?^^-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5 (6억~10억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6 (10억~20억 구간)
10억~20억 구간, 39살 末~41살 初
:찰나[ 刹那 ] -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말.
1. 돈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들어오다 보니 솔직히 이 구간이 어디쯤인지 헷갈리고 대략 이쯤 일 것이란 생각뿐.
2. 가부줄 첨 사업을 시작한 곳이 “행신역 앞 사무실 200/22로 시작하여, 백석역 오피스텔->웨스턴돔 사무실->고양시 성사동(하치장)->현 파주 사무실”까지 총 5번의 이사를 감행하였고, 가부줄 이미지답게 “너 월북 준비하냐~”는 말 까지도 들었다.
3. 당시 나의 영업 전투력은 거의 람보급으로 “안전모란 쇠철모와 카탈로그란 소총 한 자루, 명함이란 탄창을 끼고” 적진 깊이 침투하였고, 하늘에 탕탕탕 세발의 총을 쏘면 내 앞에서 적(경쟁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고, 그 재미에 미친놈 마냥 여기저기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원청사, 단종사, 제조사, 심지어 아군인 나의 직원들”에까지 총을 쏘아대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4. 당시 하치장으로 어렵사리 데리고 온 전 직장동료(주식쟁이)는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었다. 아주 진지하게…
5.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헤헤헤 후배”의 모래 마진에 속아 하치장을 낸 시기였고, 하치장 포지션은 “총 매출액 대비 2~3% 미만, 총 고정비 대비 40% 이상”을 차지하는 엽기적인 실적을 나에게 안겨 주었으니, 내 어찌 미친놈이 되지 않을 수 있었으라…어쩜 직원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6. 어찌 됐든, 난 전진 앞으로~란 구호로 영업 전선에 임하였고, 때론 악성이란 부비츄랩에 걸려 힘들기도 하였지만,.. 그 힘듦 만큼 잔고도 쌓여 갔다.
7. 친구들 간의 교신은 점차 멀어져 갔고, 사는 모습에서 이젠 거의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안 보고 안 듣고 사니 속이 다 편했다.
8. 내 사는 모습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하치장 월세 275만 원이 아까워 그럴 바엔 차라리 토지를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한 시기이기도 하다.
9. 악성을 잡다 잡다 힘들면 "법적 조치"를 취하였고, 동종업체는 법무사에 의뢰하였지만 나는 우리 와이프가 직접 “의정부 고양지원과 파주 법원”을 돌며 업무를 진행하였고, 법정에도 2~3번 직접 섰었다. 법정에서 내 억울함을 다 토해 내리라 생각하였지만 2~4분 만에 끝나 버려 뭘 말할 시간도 없더라.. 자녀분들이 있다면 꼭 재판장에 들어가 실제 재판을 보길 추천한다. 정말 배울게 많다. 참고로 와이프는 미술 전공이다. 법과는 전혀 상관없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10. 이 시기가 되니 더 이상 “텐인텐, 모네타”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졌고, 토지나 소형 건물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부줄 이때 “수원, 일산, 의정부. 파주, 부천, 인천”등의 소형 빌딩을 주로 봤었고, 실제 몇 개는 직접 임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돈이 어중간했다.
11. 하루에 두 끼 먹는 식습관은 그래도 유지되고 있었고, 여전히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이래서 방가 후님 먹방이 그렇게 좋았다> 참고로 가부 줄은 “ 홍어, 과메기”류 및 생물은 거의 먹질 않는다. 어릴 적 깨끗하지 못한 음식을 먹다 보니 속앓이를 많이 하였고,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12. 듣보잡 업체나 각종 보험 카드사 법무사, 추심업체……기타 등등 온갖 업체에서 만나려 찾아오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오고, 99% 태짜를 놨다.
13. 가부줄은 성격은 미친놈인데 결제 하나만큼은 A급이라고 소문이 났고, 우리네 결제가 대부분 익월말 결제임에도 “1천만 원 미만 및 영세 업체”는 익월 5일에 결제를 해 줬다. 현재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14. 학교 졸업 후 12년 걸려 10억 언저리 만들었는데 그다음 10억은 겨우 1년 4~5개월 걸리더라.. 와이프가 고생했다고 프라다 서류가방 하나 사줘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소비가 크게 늘지 않았다.
15. 사실 고민이 많았다 10억~15억 구간을 나누자니 쓸게 없고, 10억~20억으로 나누자니, 이질감이 생길 것 같고 , 투자의 기재가 아니라면 일반 직장인 급여로는 쉽지 않은 구간 일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함을 내 안다. 힘내시라~
*결론*
없을 때의 기억들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지만, 이 구간은 그저 찰나~로 밖에 기억되질 않는다.
어찌 보면, 돈을 버는 행위는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 있는 집은 좋은 자전거와 보호장구에 넘어지라~ 뒤에서 잡아줘 쉽게 배우겠지만, 없는 집은 그 모든 과정을 혼자서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니 무릎이며 손발이 깨지는 것이 다반사 일 것이고 서러움도 생기겠지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자전거를 타는 법만 익힌다면, 내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다.
지금 넘어졌어도 포기할 필요 없음을 말해주고 싶다.
어쩜, 삶이란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그 무환반복 아니겠는가~.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6 (10억~20억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7 (20억~30억 구간)
20억~30억 구간, 41살 초~42살 하반기
: 3대 부자 없고 3대 가난뱅이 없다.!
1. ”탁탁… 총각~, 탕탕탕 옥탑방 총각~…~””어. 이 시간에 주인집 아주머니가 웬일이시지” 핸드폰을 보니 새벽 3시 30분.. 아 미치겠네~. 옷을 입고 나가려는 순간… 핸드폰 화면 젤 위쪽에 붇카페 댓글 콩나물 머리가 보인다~”아… 꿈이었구나…. 악몽이다.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2. 나에게 가장 무서움은 과거의 내 모습 돌아가는 것. “과거로 시간여행”을 개발하는 넘이 있음, 무려 두 달 동안 헬스장에서 연마한 내 근력의 90%를 사용해 싸다구를 날릴 것이다.
3. 고양시 성사동 하치장은 1년을 하고 접었고, 소형빌딩을 구매하려던 나의 마음은 이미 토지에 꽂혀, 고양시~파주시 일대의 “창고 및 계획관리 토지”를 보러 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가부줄 추진력 하나는 최고다. 생각하면 즉시 실천해야 한다. 2달 만에 파주에 창고 낀 토지(307평)를 구매하였고 이사를 갔다. 41살 겨울이었다. 2달 후 창고는 편의점으로 임대를 줬고 나머지 땅에 가건물을 세우고 사무실 및 창고로 쓰고 있다.
4. 첫째가 2학년이 되니 사는 곳이 아파텔(상업지)이라 학교와 1블록 차이가 나 굳이 학교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시겠단다… 난 절대 반대!. 애들 케어하라고 차도 사줬는데 뭣 하려 이사를 가느냐~… 결론은 사는 집을 전세 주고 학교 인근 아파트로 3.1억에 전세를 왔다. 작년 6월이다.
5. 그냥 살자는데 이사를 가니 짜증이 확 났다. 야 … 그럴 거면 차라리 서울에 집을 알아봐… 가부줄 또 추진력이 나온다.. 이것저것 추려보니 현금 15+@가 나왔다.. 급히 우리는 “반포~잠실~서초~방배~일원~도곡 라인”을 돌아다녔고, 도곡1동에 빚 없이 들어가는 집을 구매했다. 어느덧 3 주택자가 되었다.
6. 가부줄 부동산의 인간 지표이니, 이 친구가 “집을 사라면 팔고, 파시라면 사시라~” 잔금 치르니 2018. 10월 중순이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사랑도 한 번에 식듯, 팔팔 끓어 냄비 뚜껑을 밀어낼 것 같던 부동산 기세도 가부줄 잔금 치르니 조용히 식더라~ 젠장~
7. 아르바이트생(노랑머리)은 집으로 주식쟁이 친구는 독립해서 나 갔고, 그 자리에 38살 보험쟁이 처남이 직원으로 입사했다.
8. 친구들의 사는 모습은 3종류의 석고처럼 굳어졌다. 1계급-공무원 및 직장인, 2계급-사업, 그리고 "뚜뚜 연락두절 無계급". 각자의 색깔이 너무 뚜렷해져 , 1계급은 2계급을 넘볼 수 없고 뚜뚜 계급은 1계급을 넘 볼 수 없게 되었다. 친구들 간의 모임은 시간이 갈수록 바다 모래처럼 잘 뭉쳐지지 않았다.
9. 가부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있으니 “3대 부자 , 3대 가난뱅이 없다”란 문구이다. 정주영 회장님의 자서전에 보면 나오는 문구였고, 정말 다행스럽게 우리 집은 3대가 가난뱅이 집이었다. 누구네는 원래 잘 살았다가 큰아버지가 노름에, 계집 질에, 사기에, 보증에 날려 먹었다지만, 우리 집에선 그런 아름다운 미담들도 없었다. 그냥 없는 집이었다. 왜 있지 않는가.. 원래 그냥 가난한.. 쟤는 원래 가난해.!
10. 자산 10억-20억 구간은 가을날 바람 불면 떨어지는 은행잎처럼 붇회원(직장인) 분들 많은 탈락자가 나왔을 것이다. 20억-30억 구간은 그 가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있던 은행(전문직)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구간이다. 가부 줄은 이 구간을 우사인 볼트의 속도로 지나 버렸다.
11. 사는 모양새는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10-20억 구간 그대로가 20-30억 구간으로 구간 변경만 있었을 뿐. 마치 2차선에서 3차선으로 변경된 것뿐. 아차 속도는 좀 더 낼 수 있구나..
12. 시골집에 대한 생각이 늘었다. 새로 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원주택 및 농가주택 리모델링 책을 사셔 읽었다. 조금씩 고치자니 돈이 끝도 없이 들어가고, 그래도 살만해졌는데 그대로 두고 보자니 양심이란 놈이 자꾸 나타나고… 현재는 지켜보고 있다. 과연 어떤 게 맞음 인지도 모르겠다.
13. 형제들은 막둥이 남동생이 어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저 넘아는 어디에 내놔도 죽지 않을 넘이라~ 그냥저냥 밥벌이하며 애 둘 어렵사리 키우고 사는 줄 안다. 장담컨대 형제들의 재산을 다 모아도 내 1/10일 될까 싶다. 아주 가끔씩은 내가 장남이었음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 막내라 나서기도 그렇고 눈치 보인다. 내가 장남 이었음 내 밑으로 다 죽었다.~
14. 어느 순간부터 매월 모아지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필요하면 금고에서 현금 찾아 쓰고, 4장 카드 아무거나 집히는 데로 긁으며 살지만 절약이 몸에 배면 쉽게 돈을 쓸 수가 없다. 이 느낌은 돈을 모아본 분들은 대부분 아실 것이다.
15. 이 구간이 되니 헛생각이 들더라. (헛생각은 이번 시리즈 마지막 -8로)
*결론*
내 43년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아무도 나에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 인간적인 매력이 떨어짐도 있을 것이요, 가끔씩 나타나는 살쾡이 과의 공격성 때문 이겠지만, 그냥 제는 없는 사람이니 가까이 가기 싫었던 것 같다. 고맙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 살아라 했다면 이렇게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붇카페 글을 쓰는 이유가 있으니,
첫째는 나와 같은 루저, 흙수저도(성실, 빠름)이란 무기만 갖춘다면 세상에서 경쟁해 볼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싶었고
둘째는 허겁지겁 지나버린 내 과거들을 한 번씩 훑어보고 싶었다. 과거란 거울로 내 미래를 점쳐보고 싶었다. 가부줄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또다시 마이너스 나락으로 떨어질지.. 아님 생각지도 못한 큰 금액에 도전할 수 있는 그릇이 될지..
내가 지났왔던 (1-7) 구간을 지나고 있을 후배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되진 않을 것이라고…
너가 생각했던 것처럼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너가 생각했던 것처럼 실패하진 않을 것이라고..
그러니 용기를 갖고 성공 보단 실패를 배우라고..!!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7 (20억~30억 구간)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8 (30억~그 이후 삶에 대하여)
30억~그 이후 삶에 대하여
1.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생의 변곡점은 30대 후반이 아니었다. 중 3 때였다. 공부를 잘하거나 집에 돈이 있음 인문고를 갔었고, 어중간하거나 돈이 없으면 실업고를 가야 했다. 후자에 정확히 부합한 가부 줄은 당당히 실업고(공고)를 갔었다. 공고생의 삶은 뭘 상상하든 그 이하이다.. 미친놈들 많았다.
2. 고등학교 2학 때 터미널 옆 보건소에 세워둔 중고 자전거를 도둑 맞고 버스 터미널까지 논길 따라 하루에 한 시간씩을 걸어 다녔다. 혼자 걷다 보니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고, 그 상상의 나래 중에 대부분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도시(서울)에 대한 동경이었다.
3. 내 나이 서른쯤엔 서울이란 곳에서 양복 입고 회사원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그 시골 촌놈이…). 웃긴 게 뭔지 아는가…. 정말 그렇게 되어 있더라..
4. 겨우 2구간(5,000~1억) 구간을 간신히 넘긴 서른 초반 때 가부줄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니, 내 나이 마흔 초반에는 사장 소리 듣고 있겠다 생각했다. (거지 거죽을 며칠 전 벗어던진 놈이.. ) 또 웃긴 일이 벌어졌다. 작든 크든 사장이 되어 있더라..
5. 가부줄 43살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내 나이 50대 초 중반이면 1천억 원대의 자산가 되어 있지 않을까…..(재산이라곤 기껏해야 30억 정도 있는 넘이…). 그렇지만, 또다시 웃긴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지.. 건실한 중견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을지… 세상은 가봐야 알지 않겠는가…?
6. 어쩜 인생이란 가보지 않은 곳에 좌표를 찍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설령 허튼소리 같더라도 좌표를 찍었다면 표류하는 시간의 차이뿐 분명 좌표에 도달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난 지금 방금 그 좌표를 찍었다.
7. 19살 6월쯤에 선생님께서 인천으로 취업을 보냈다. 그나마 착실했던 학생이라 욕을 먹지 않겠지 ~그 생각으로 보낸 것 같다. 둘째 누나에게 15만 원을 빌려 인천터미널에 도착하니 7만 몇 천 원이 남았었다. 그렇게 167cm. 58kg 검은색 피부의 촌놈이 도시살이의 첫걸음을 떼었다. 당시 친구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고3 “대입”이란 “고난의 행군”을 할 때, 나는 안전화를 신고 “삶”이라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생각하니 서글프더라.. 그때의 내 모습이... 또한 7만 원이 23년 지나니 30억으로 불어나 있더라... 신기한 일이다.
8. 가부줄 50억이 기점이다. 이 지점이 지나는 순간 쓸만한 인재 2명을 구해 (가난, 실패) 이 징글징글한 단어와 영원히 결별을 청할 것이다. 세부 계획은 중요치 않다.. 어차피 인생이 계획대로 흘려간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부딪치다 보면 제까짓 게 열리겠지..
9. 이런 잡글이 뭐라고 어떤 구간은 1만 명까지 조회가 되었더라..
부끄럽다. 또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누구에게 속 시원히 얘기해보지 않았던 속맘을 오타투성이 글로 쓰다 보니 “잊고 싶었고, 잊으려 했던” 유년의 자아를 만나게 되어 사실 여러 번 눈물이 났다. 때론 너무 무서워 도망가고 싶었고, 때론 너무 어두워 극단의 삶을 생각도 했었다. 돌이켜 보면 세상살이 참 만만치 않았다. 내 나이에서 과연 이런 말이 합당한 지는 모르겠지만 난 분명 그런 길을 걸어왔다.
10. 이상하다. 잡설들을 써댔을 뿐인데 그새 난 성장해 있더라.. 나와 같은 사람도 이렇듯 써 재끼는데 출중하신 회원 분들 많은 거 안다. 능력을 보여 주시라~.. 붇카페라 부동산 얘기만 쓰란 법 있던가.. 솔직히 난 “부동산 전망, 집값, 투자, 정치” 이런 글은 읽지도 않는다 (방배동 30년 글은 다 읽었다. 보통이 아니시더라~). 어디 투자해라 어디가 올랐다.~ 정말 아는 사람은 그런 말 함부로 못한다.! <확신하다>
11. 가부줄 붇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나 했더니, 단 몇 달 사이에 경쟁자 몇 명이 가부줄 심장을 뛰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감히 잠자는 야옹이의 코털을 건들다니.. 내 고이 숨겨놓은 야옹이 발톱으로 그 넘들 조지고 올 테이니 기다리시라... 당분간 본업에 충실하려 한다.
12. 어찌 됐든 감사하다.. 글을 쓰면서 치유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느꼈다. 혹시 길 가다 엄청 빠른 걸음에 나비 날아다니는 구찌 신발을 신고 , 황토색 프라다 가방을 들고 연신 전화하며 가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 사람이 난 줄 아시라~^^ 아는 체 하면 커피 한잔 대접 하리. 막상 만나면 엄청 재밌다ㅎ 너무 웃겨 까르르까르르 뒤로 자빠질 것이다.
*결론*
성투하시라~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
나는 다시 戰場으로 돌아간다~
[출처] 자산별 사고방식과 삶의 질-8 (30억~그 이후 삶에 대하여) (부동산 스터디') |작성자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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